조단 갤러리

제목: 운동, 여친, 놀이 다 금지예요
이름: 曺 端 * http://www.zoqmin.com


등록일: 2012-02-02 11:22
조회수: 1250 / 추천수: 139


안녕하세요.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 학대’ 당하는 중딩 2년차예요. 지금은 방학이라서 조금 다르지만요.
얼마 전 맥박을 쟀더니 1분에 90번 나왔어요. 쉰살 아빠는 70번이었고요. 신진대사가 그만큼 활발하다는 뜻이래요.
그런데 나의 ‘생활 신진대사’는 형편없어요. 모든 욕망을 강제로 유예당했기 때문이에요. 운동도 여친도 놀이도 다 금지예요.
무슨 청춘이 이렇게 한심한지 모르겠어요. 신문에서 읽은 산란계의 삶이 떠오르네요.
작은 전자레인지 크기의 철망에 꼼짝없이 갇혀 기계처럼 계란만 낳다가 살코기로 팔려나간대요.
저나 산란계나 신세 처량하기는 다를 바 없어요.


친구는 내게 사치스러운 말 하지 말라고 해요. 그 애는 찌질이에요. 맞고 빵셔틀하고, 삥을 뜯겨요.
교실 뒤편에서 그 애가 맞는 소리가 들려오면 머리칼이 쭈뼛 서요. 부당한 폭력이에요. 학교에선 그 애와 말도 섞지 않아요.
찌질이 친구는 찌질이가 되니까요. 학원에서나 대화하는데, 그래도 그 애는 고마워해요.
하지만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뒷담화나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비겁하고 한심해요.


그 애는 늘 자신에게 화를 내요. 몹시 맞은 어느 날 살펴보니 멍이 열 군데가 넘게 생겼어요.
모멸을 느끼지만 창피하고 미안해서 부모님에겐 알리지 못한대요. 너무 힘들어 해요.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워요.
쌤한테 신고해봤자 되려 보복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저도 알아요.
우리 반 일진은 쌤이 주의를 줘도 외면하거나 침을 뱉어요. 쌤은 슬그머니 넘어가요.


어느 날 갑자기 쌤이 전화했어요. 엄마도 맞고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고요. 알고 보니 대구에서 폭력 피해 학생이 자살한 거였어요.
평소 안 하던 행동이에요. 그런데 내가 누구를 때리냐고 묻지는 않아요. 신문·방송·인터넷에선 난리가 났어요.
일부 신문은 교권추락이 문제라고 주장해요. 학교와 쌤의 잘못이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쌤들이 셌던 과거에도 학교폭력은 있었대요.
담임쌤은 신문·방송이 그만 떠들었으면 좋겠대요. 자꾸 귀찮은 일이 생긴다고요. 그만둬선 안돼요. 친구가 억울하게 맞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나섰다고 하네요. 전에 없이 학생도 만났대요. 곧 정부가 대책을 낸다는데 저도 의견이 있어요.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에 대한 정밀한 조사는 아주 중요해요. 성적 지상주의와 입시 공부가 가장 큰 원인이에요.
마음껏 뛰놀지 못하니 왕성한 혈기를 주체 못하고 엉뚱한 데 눈길을 돌리게 돼요.
정의·배려·헌신·양보·자제 같은 소중한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 없어요. 가정교육, 사라진 지 오래에요.
이기주의·황금만능주의·권리만 알고 책임은 모르는 마비된 윤리의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그런데요. 본질적 원인과 부차적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돼요. 인터넷 게임을 문제삼는데 인터넷 게임을 하지 않는 가해학생도 있어요.
교권추락, 이건 좀 더 작은 문제예요.


학교에서 부당한 폭력이 통하면 10대가 주역이 되는 미래는 약육강식의 동물 사회, 비윤리 사회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논의해야 해요. 학교나 쌤들, 학부모, 학생, 교육당국의 유기적 연계가 필요해요. 적발하고 벌주는 데서 나아가 효율적인 문제 해결 기능을 발휘하도록요.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인식과 사고방식을 바꿔야 해요. 공부 경쟁력을 더 기를 것이냐, 학교폭력을 막을 것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국·영·수 시간을 줄이고 도덕·체육·예능 수업을 늘려야 해요. 입시 때문에 왜곡됐던 교육을 정상으로 복원하는 거지요.
한편으로는 정서를 함양하고 용솟음치는 아드레날린을 건강하게 발산할 통로를 만드는 길이고요.
쌤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주는 방법이기도 해요.

국·영·수 수업 줄이면 난리가 날 거예요. 버텨야 해요. 설득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며칠이나 몇 달 몇 년 걸려서 이뤄지지 않아요.
그것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야만적인 졸부국가란 소리를 안 들으려면 꼭 필요한 일이란 걸 납득시켜야 해요.
대통령은 학생들 계속 만나야 돼요. 몇 번 만나고 끝내면 효과가 없어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좋은 학교,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부수적 효과도 얻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전문가나 고위관료, 정치인이 아니라 당사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은 양극화, 비정규직 등 굵직한 사회 현안에도 적용할 만한 비법이에요.

아이들에게는 폭력이 비열하고 비겁한 짓이라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가르쳐야 해요.
내 친구를 때리는 애들은 자기들이 남자답다고,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의 발원지는 가정이에요. 발원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에요.

학교폭력은 국가적 재난이에요.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돼요.
돈이 필요하다면 몇 십조원이라도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써야 해요.
특별 정부조직도 만들어야 해요.
나라를 살리는 일이니까요.





조호연 사회·기획에디터(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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