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단 갤러리

제목: 임을 위한 행진곡
이름: 曺 端 * http://www.zoqmin.com


등록일: 2010-05-18 18:26
조회수: 3017 / 추천수: 296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굳이 운동권 출신이 아니어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민중가요 중에서 이 만큼 잘 알려진 노래도 없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탄생했다.

소설가 황석영 씨와 광주의 문화운동가들은 1980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당시 30살) 씨와 그의 야학 동료 박기순(당시 21살) 씨를 추모하며 그들의 영혼 결혼식을 주제로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을 만들었다. 노래극 15곡 중 마지막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극이 대학가를 통해 퍼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운동에 힘을 주는 대표곡이 됐다.

노래는 백기완 선생의 시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사를 가져 오고 작곡은 광주지역 문화운동가 김종률 씨가 맡았다.

1980년 초 백기완 선생은 감옥에서 보안사의 군홧발 고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때 입으로 새기던 '비나리(시)'가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가 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민중가요가 아니다. 5ㆍ18을 위해 만든 '5ㆍ18 노래'다. 또 1980년대 집회· 시위 현장의 대표적 애창곡으로 민중 가요의 대중화를 견인했다는 평을 받는다. 1970년대에는 주로 대중가요, 외국민요, 복음성가 등을 불렀으나 이 노래를 필두로 민중 가요의 흐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야말로 민중과 함께 시대를 헤쳐 온 역사성을 가진 노래인 것이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광주시 북구 운정동 5ㆍ18 국립묘지에서 열리는 '5ㆍ18 3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순서를 제외하기로 해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5ㆍ18 기념식은 지난 2004년 고(故)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정부 주관으로 치러졌다. 노래는 이후 해마다 기념식에서 추모곡으로 사용돼 왔다.

민중의 소리 - 구도희


30주년이다.
하늘도 알았는지 어제부터 많은 비를 뿌려준다.
군사정권시절 금지곡 목록도 아니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께선 30주년 축하로 화환을 보내셨네요.
개념을 밥말아 드셨는지.
하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고 방아타령을 집어넣은 의도가 보입니다. 그려!
꼭 보여줍시다.
오늘의 수모를 6월2일에 심판하자!
-추천하기     -목록보기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