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단 갤러리

제목: '한국 재즈 1세대’ 밴드의 오래된 열정
이름: 曺 端 * http://www.zoqmin.com


등록일: 2007-11-30 14:05
조회수: 3053 / 추천수: 346



“신관웅, 왜 피아노 안 쳐! 내가 당신들 연주 들으려고 2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중년의 사내가 혀 꼬인 소리로 외쳤다. 오후 9시. 연주를 시작할 시간이다. 썰렁했던 클럽은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고 있던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씨는 그저 허허 웃으며 “네, 지금 바로 합니다”라고 했다.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 재즈클럽 ‘문글로우’(Moon Glow)의 목요일 밤은 ‘재즈 1세대’의 오래된 열정으로 뜨겁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최세진(드럼·77), 강대관(트럼펫·72), 이동기(클라리넷·71), 김수열(색소폰·66), 최선배(트럼펫·65), 신관웅(피아노·61) 등이다. 척박했던 1940~60년대에 재즈의 씨앗을 뿌렸던, 그야말로 한국 재즈의 선구자들이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오직 재즈의 길만 걸어온 이들이지만, 정기적으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문글로우뿐이다.

‘재즈 1세대’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전, 이들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었다. 2001년 크리스마스 때 피아니스트 신관웅씨가 흩어져 있던 왕년의 스타들을 모아 공연을 펼친 것이 다시 모이게 된 계기였다. 2002년 신관웅씨는 “연주할 장소도 없고 서러워서” 스스로 재즈클럽 문글로우의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이제껏 목요일 밤마다 이곳에 모여 공연을 펼친다.

공연을 한 시간 앞둔 오후 8시, ‘왕년의 스타’들이 자신의 악기 가방을 들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대 뒤편에 모여 앉아 목도 축이고 담배도 피우며 옛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한쪽에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색소포니스트 고 이정식씨의 장례식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또 한쪽에서는 정성스레 악기를 닦으면서 음정을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50여년을 해온 일이니 허투루 할 만도 한데, 악기를 손보는 손길 하나 하나가 애틋했다. 최선배씨가 “오늘은 이동기 선생이 아파서 못 나온다고 전화 왔어요” 하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파이프에 담뱃잎을 꾹꾹 눌러 담던 강대관씨는 “나이 먹어 자꾸 아프면 안 되는데…” 하면서 트럼펫을 집어 들고 무대로 걸어나갔다.

호로로로로로! 올해 환갑인 밴드의 ‘막내’(?) 신관웅씨가 피아노에 앉아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최고령자인 최세진씨가 힘차게 행진곡 풍의 드럼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전설적 재즈 드러머 아트 블래키의 ‘블루스 마치’였다. 주름진 얼굴과 굽어진 허리로 슬슬 걸어나왔던 이들은 어느새 반세기 동안 제 몸의 일부가 돼 버린 재즈와 신명나게 섞이고 있었다. 뜨거운 신명으로 가득한 ‘데킬라’를 연주하는 순간,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바에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젊은 청년이 무대 앞으로 나와 탬버린을 두드렸다. 그는 연방 “데킬라!” “막걸리!”를 외쳐댔다. 무대 중앙의 벽에는 지난 4월 운명을 달리한 ‘1세대 밴드’ 멤버 고 홍덕표씨의 트럼본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그 말 없는 트럼본은 무대 위의 친구들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이들의 손짓, 눈빛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글 이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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